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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얼과 문화 향기 가득한

우리의 소중한 자산


가을빛이 가득한 교정. 여름 햇살의 강렬함을 뒤로 하고 한가로이 캠퍼스를 거닐다보면 우리 역사의 오래된 기억을 만날 수 있다. 삼각지 앞에 서 있는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붉은 벽돌의 건물은 푸른 수목에 둘러싸여 더욱 신비스럽다. 공과대학과 문과대학을 양쪽에 끼고 그 샛길로 들어서 건대부고 쪽으로 향하다보면 경복궁 등의 고궁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한옥 한 채를 만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박물관 안에는 조선시대의 옛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고서를 만날 수도 있다. 건국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문화유산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알고도 지나치고 모르고도 지나쳤던 교내의 진귀한 문화재에 돋보기를 들이대 보자.

 

박물관 앞 삼각지, 건국대학교의 상징인 황소상이 힘차게 서있는 널찍한 잔디밭과 일감호를 양옆에 끼고 삼각형 모양을 그리고 있는 그곳이 바로 장한벌 교통의 맥이다. 그러나 이곳을 지날 때면 항상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도서관으로 가는 오르막길 옆에 위치한 붉은 벽돌건물 때문. 직접 올라가 보고는 싶지만 박물관을 향한 계단은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새로 변경된 UI가 박물관을 상징으로 삼고 있으니 우리 학교의 모태임은 분명한데….


상허기념관(현 박물관) … 서북학회의 기억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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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상허 유석창 박사의 흉상이다. 우리대학과 민중병원 설립을 통해 당시 일제의 압박과 분단의 설움을 겪고 있던 민족의 아픔을 다독이려 했던 인물.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일우(一憂) 유승균 씨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그는 우리 민족의 건강과 교육과 식량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우리의 주식인 쌀을 지키기 위해 농촌 부흥운동을 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민중병원의 시초인 ‘사회영중앙실비진료원’을 세웠으며, 분단의 위기에서 나라를 바로 세울 젊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건국의숙’을 건립했다. 바로 이 ‘건국의숙’이 조선정치학관에서 정치대학을 거쳐 건국대학교로 이어지는 것이다. 당시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했던 건국의숙은 85년 현재 위치로 이전되면서 ‘상허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정치학관으로 쓰이기 이전에도 한국근현대사에 기념적으로 기릴만한 활동이 펼쳐졌던 곳이다. 일제 식민지하에서는 ‘서북학회’의 독립운동 총사무소로 쓰이면서 민중계몽운동, 민족실업진흥운동 등 항일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서북학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체된 이후에는 보성전문학교, 협성학교 등 많은 민족학교들의 거점이 되었으니, 한국근현대사의 산실임을 기려 2003년 6월에는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다. 


박물관 전시유물들…「동국정운」과 「율곡선생남매분재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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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한국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구석기시대의 각종 주먹도끼와 토기, 소박하고 단아하면서도 가지각색의 모양과 빛깔을 한 조선시대의 떡살과 백자,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노리개, 붓걸이, 경대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그러나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동국정운’과 ‘율곡선생남매분재기’, ‘동국정운’은 ‘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는 국보로서,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직후 우리나라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 음으로 표기한 책이란다.


훈민정음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백성들 사이에 그 음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던지,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동국정운>을 편찬함으로써 한글의 통일된 표준음 정착을 꾀하였다. 본래는 1940년 경북 안동에서 제1권과 제6권만이 발견되었으나 나머지 4권의 책이 발견되지 않아 연구에 많은 지장이 있던 상황이었는데 건국대에서 1972년 이를 발견하여 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건국대학교 박물관에 6권 전질이 소장되어 있으며 국보 142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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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정운이 놓여있는 선반 위엔 ‘율곡선생남매분재기’가 걸려있다. 이것은 율곡 이이선생의 아버지 사후에 자손들이 모여 재산을 분배한 내용을 담은 것인데, 놀라운 것은 조선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시집간 자매를 포함한 4남 3매가 재산을 균등히 분배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의 규정에 따라 시집간 자매에게도 재산을 균등히 분배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이는 조선 후기 가부장적 사회 체제가 강화된 때의 사정과는 다른, 조선 전기의 사회 제도 및 경제제도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혼인한 딸에게는 그 재산 분배를 차등적으로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 2000년대에 이는 가히 보물(제477호)로 지정될만한 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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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내 문화재들 … 정재문가와 5층 석탑 등


꼭 박물관 안에만 문화재가 보관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과대와 공과대를 양쪽에 끼고 이과대를 향해 올라가다보면 알 수 없는 한옥 한 채가 나온다. 그곳을 지나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고개를 갸웃하며 ‘학교에 웬 한옥인가’하고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이는 바로 ‘사직동 정재문가’. 헌종 별세 후에 당시 세도정치의 핵심인 안동 김씨가 그들의 허수아비 철종을 임금으로 세우면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하전을 모함해 죽였는데 그 이하전의 제사를 받드는 집이었다고 한다.


전통적인 기와양식과 서양풍의 창문틀이 소위 ‘퓨전’되어 있으니, 조선시대부터 일제시대에 이르는 한옥의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978년 종로구 사직동에 있을 때 도시계획에 따라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당시 우리대학 총장이었던 곽종원 박사가 지금의 위치로 이전․복원시켜 놓았다. 이 건물은 현재 서울시 민속자료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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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도 캠퍼스 네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모이기까지는 동문들의 성원이 컸다. 박물관 2층에 전시되어 있는 300여점의 ‘떡살’은 우리대학 홍철화 동문이 오랜 시간 수집했던 것을 기증한 것. 떡을 만들 때 무늬를 내기 위해 사용했던 떡살은 국화무늬, 빗살무늬, 격자무늬 등 갖가지 모양과 색깔을 하고 있어 그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이 빛을 발한다. 또한 박물관 바로 앞뜰에 투박하면서도 강인한 모양새로 자리잡고 있는 5층 석탑은 우리대학 정삼태 동문이 기증한 것. 이는 고려시대 것으로 일본인이 가져가려고 하는 것을 정 동문이 모든 경비를 물고 사들였고 그의 자손들이 “평소 아버님의 뜻이었다.”며 기증했다.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상허선생의 뜻에 따라 건국대학교를 거쳐 간 동문들이 발굴, 기증한 문화재들은 박물관에 소중하게 소장되어 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학을 만들고 지켜가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캠퍼스 곳곳에 잠들어있는 그 정신은 단순한 아름다움 이상의 기품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상허선생의 뜻에 따라 건국대학교를 거쳐 간 동문들이 발굴, 기증한 문화재들은 박물관에 소중하게 소장되어 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학을 만들고 지켜가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캠퍼스 곳곳에 잠들어있는 그 정신은 단순한 아름다움 이상의 기품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상허박물관(구 서북학회 회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중인 상허기념관은 건국대학교의 역사가 시작된 유서깊은 건물이다. 1946년 본 건물에서 우리학교의 모체인 ‘조선정치학관(朝鮮政治學舘)’이 창립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건물은 본래 1908년 항일민족운동단체인 <서북학회(西北學會)>의 회관으로 출발하였다. 이후 오성학교, 협성실업학교 등 교육기관의 교사로 사용되다가 1941년경 우리 학교 설립자인 유석창 박사가 인수하였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하였던 것을 1985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 복원하였다. 건물의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6월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다.




유석창 박사 흉상


유석창 박사는 건국대학교와 민중병원 설립을 통해 당시 일제의 압박과 분단의 설움을 겪고 있던 민족의 아픔을 다독이려 했던 인물.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일우(一憂) 유승균씨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그는 우리 민족의 건강과 교육과 식량을 지키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상허(常虛) 유석창(劉錫昶)박사 유품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한국사의 흐름을 보여준다. 구석기시대의 각종 주먹도끼와 토기, 소박하고 단아하면서도 가지각색의 모양과 빛깔을 한 조선시대의 떡살과 백자,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노리개, 붓걸이, 경대 등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하다. 




동국정운


‘동국정운’은 ‘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는 국보로서,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직후 우리나라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 음으로 표기한 책. 훈민정음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백성들 사이에 그 음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던지,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동국정운>을 편찬함으로써 한글의 통일된 표준음 정착을 꾀하였다. 현재 건국대학교 박물관에 6권 전질이 소장되어 있으며 국보 142호로 지정되어 있다. 




율곡선생남매분재기


보물(제477호)로 지정된 이 고서는 율곡 이이선생의 아버지 사후에 자손들이 모여 재산을 분배한 내용을 담은 것인데, 조선 전기의 사회 제도 및 경제제도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율곡 이이 선생 집안에서 형제간에 재산을 나눈 사실을 기록한 문서[分財記]이다. 조선시대 분재기는 아버지가 생전에 직접 재산을 분배하는 분급문기(分給文記)와, 아버지 사후 자식들이 모여 재산을 분배하는 화회문기(和會文記)가 있는데, 이 분재기는 화회문기에 속한다. 얼마 남아있지 않은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 전기 문서로 당시의 상속 분배 관행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도정궁 경원당 (都正宮 慶原堂, 서울시 민속자료 제9호)


도정궁 경원당은 19세기 조선 왕실의 종친 도정(都正) 이하전(李夏銓, 1842~1862)의 옛집으로 전해진다. 이하전은 선조(宣祖)의 생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13대 봉사손(奉祀孫)으로 1862년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를 받아 사사(賜死)된 인물이다. 원래 위치는 종로구 사직동 262-85번지이었는데, 1979년 건국대학교 교정으로 이전됐다. 20세기 초에 지어진 건축물로 추정되며 건평 36.66평의 평면이 'ㄱ'자 형의 가옥이다. 벽체, 창호 처리과 현관을 구성한 기법 등으로 볼 때, 서양식 과 일본식의 건축기법이 모두 가미되어 있다. 구한말․일제시기의 우리 한옥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민속자료로서 가치가 있어 서울시 민속자료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시대 5층 석탑 정삼태 동문 기증


이 석탑은 원래 전북 군산 지역의 폐사지에 있던 고려시대 탑으로, 일본으로 반출되려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군산지역 폐사지에 남아있던 탑을 일제시기 한 일본인이 자신의 사택(私宅) 뜰에 옮겨 놓았던 것이다. 해방 후 일본인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그의 집은 한 고아원으로 사용되었는데, 1972년 그 일본인이 다시 와 탑을 일본으로 반출해 가려고 포장을 마쳐 놓았다. 이 소식을 들은 동문 정삼태씨가 금액을 지불하고 탑의 반출을 막았다. 1993년 기증받아 현재 건국대학교 박물관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의 탑처럼 세련된 아름다움은 없으나 고려시대 특유의 힘차고 질박한 멋을 간직하고 있다.



홍문화 동문이 기증한 떡살 300여점


떡살이란 절편 등의 떡에 무늬를 찍을 수 있도록 만든 공예품이다. 대개 서민들은 나무로 떡살을 만들어 사용하였지만, 양반가나 돈 있는 집안에서는 도자기로 만든 것을 사용하였다. 나무로 된 것이든 도자기로 된 것이든 그 문양은 소박하면서도 다채로와 전통의 아름다움이 있다. 건국대학교 박물관에서는 1997년 동문인 홍철화 선생이 20여년간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지고 수집했던 300점의 도자기 떡살을 기증한 일이 있어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의 떡살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조선시대의 민화들


민화는 일반적으로 사대부나 화원이 아닌, 민간의 이름없는 화가들이 일반 대중의 기호와 생활의 쓰임새에 맞게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민화는 조상들의 소박하고 단순하며 진실한 삶의 면모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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